"오, 배움이여"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 맨 처음에 나오는 말 입니다.
우리 신학원에서는 이러한 복음의 기쁨을 잘 깨닫고 실천해서 구원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우리의 경험으로도 알 수 있듯이,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절로 기도가 솟아나오고, 저절로 봉사하게 되고, 저절로 착한 사람이 되고, 저절로 신앙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노력이 필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과 삶이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해지지 않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본질이 빠진 형식주의나 근본주의에 빠져, 기쁨이 날아가 버린 건조한 신앙생활을 할 우려가 큽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 하였습니다. 배움의 즐거움에 대한 말 입니다. 하느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배우고, 익히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찬미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 1,1-3). 또한 “그리스도인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 새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자녀라 부리고 또 불려야 하므로, 그리스도인 교육을 받을 권리” (그리스도인 교육 선언, 2항)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산가톨릭신학원은, 더욱 깊은 신앙,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기를 바라는 평신도들과 수도자들에게, 신학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전하는 교구 내 유일한 배움터로서, 평신도 사도직에 필요한 자질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성화와 봉사를 위한 배움
부산가톨릭신학원은 교구 내 수련원을 가지고 있는 3개 수도원에서 독자적으로 실시하던 신학교육을 통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평신도 가운데 신학을 공부하여 교리교사나 선교사로서 교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1982년에 주간반으로 시작하였는데, 1984년에는 야간반이 생겨났고, 30여 년 동안 1,400여 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하였습니다. 특히, 2007년에는 울산 분원이 문을 열면서, 울산대리구 신들에게도 배움의 길이 넓어졌습니다.
신학원 장소는, 처음에는 수도원에서 시작하였다가, 부산가톨릭센터,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그리고 구봉성당 뒤 건물 (구 부산가톨릭대학교 간호학과)에서 약 18년간 공부하다가, 올해 2014년부터 다시 성소의 못자리인 신학대학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주로, 개인 신앙생활의 성화(聖化)와 내실화를 위해서, 그리고 선교사나 교리교사로서 사도직에 충실히 봉사하고자 입학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공부하는 과목으로는, 성경만 해도, 성경강독부터 구약의 예언서, 모세오경, 지혜문학, 신약의 공관복음, 요한 복음, 바오로 선간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교회사와 한국교회사, 신론, 그리스도론, 성사론, 마리아론, 철학, 전례신학, 영성신학, 윤리신학, 교리교수, 사회교리 등 다양합니다.
우리 신학원의 교육기간은 2년 입니다. 부산 주간반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을 하고, 야간반은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울산 분원은 지역 특성상 화요일과 수요일에 집중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정의 학점을 이수하고 정규과정을 마친 학생에게는 선교사 자격증이나 예비신자 교리교사 자격증을 발급해 줍니다. 그리고 지식뿐만 아니라 실천도 강조하려는 목적에서 봉사학점을 설정하여 졸업하기 전까지 모두 이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발판
교육과정이 2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두 달도 아니고 어떻게 2년을 다닐 수 있는가?”하며 우려하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졸업할 때 즈음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신부님, 2년은 너무 짧습니다. 적어도 3년은 되어야 합니다.”라고요. 신학원 생활, 그 매력에 쏙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본당에서 찾아옵니다. 이분들은 오로지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자기 발로 스스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열의와 기쁨이 대단합니다.
그 동안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듣고 배웠던, 아니면 생판 처음 듣는 성경이나 신학을, 신학교 교수 신부님을 비롯한 전문가들에게 제대로 배우니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열성이 지나쳐서 질문을 너무 많이 하는 학생들 때문에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도 가끔 있어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너무 개인적인 발언이나 질문 등을 삼가 해 달라.'는 공지사항을 게시판에 올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리포트 작성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학생도 있지만, 거의 모두가 잘 극복해 내는데, 오히려 적당한 긴장이 학업의 성취도를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특히 우리 신학원의 큰 장점을 들자면, 학업뿐만 아니라 학생들 간의 우애와 친교가 돈독하여 소풍, 졸업 여행, 문화 행사, 길흉사 등에 온 마음으로 함께하며 형제애 자매애를 나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기 중에는 부산과 울산에서 각각 매주 한 번씩 미사를 봉헌하고, 방학 중에는 기도수련이나 피정을 하면서 영성면에서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연세가 드신 어떤 분은 “돌아서면 잊어먹는다.”며 안타까워하시기도 하고, 졸업을 앞둔 어떤 분은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무엇을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래도 자매님은 예전에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신학서적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신학원 생활을 잘하신 것입니다. 이전에는 아마도 신앙 체험담 같은 가벼운 책들만 읽으셨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자매님의 관심사에 따라 신약성경을 읽으시든, 성사에 관한 책을 읽으시든, 한국교회사 쪽 책을 읽으시든, 원하시는 책을 마음껏 읽으시고 정리하실 수 있잖아요.”
그렇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바탕만 마련되어도, 신학원에서의 배움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겠죠.
잘 믿도록 제대로 들려주기
졸업생들은 신학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해서, 자신의 신앙을 더욱 깊이 있게 심화시키고자 본격적으로 성경 공부나 심리상담 등 다양한 공부로 폭을 넓히기도 하고, 심화반에 등록하여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나가기도 합니다.
또한, 부산교구 평신도선교사회에 소속되어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교구에 있는 여러 단체와 교도소에서 봉사를 하거나, 시간이 없어서 통신교리를 받는 예비신자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등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속 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나 교리교사, 노인대학 교사로, 또는 본당 선교분과나 교육분과 등에서 열심히 봉사하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믿기 위하여 이해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맹목적으로가 아니라 제대로 잘 믿기 위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래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잘 이해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묵상하고, 피정하고, 성체조배하고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성과 믿음이라는 양 축 사이를 넘나들면서 조화롭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신 요한 23세 교황도 [영환의 일기]에서 “나는 조심해야 되겠다. 나의 공부는 끊임없는 하나의 기도가 되어야 하며, 기도는 끊임없는 하나의 공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1903.1.4)라고 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믿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리고 말합니다. 신앙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들음을 통해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들음을 통해서 생긴다.'는 말은 누군가 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제일 수도 있고, 영적 지도자일 수도 있고, 우리 신학원과 같은 어떤 교육기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 믿도록 잘 이해하도록 제대로 잘 들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신학원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바쁘고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평신도들이 2년 동안 체계적으로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소중한 보물인 우리의 신앙을 제대로 맞보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충분히 가치 있고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게 가까이 오너라. 내 배움의 집에 와서 묵어라.”(집회 51,23). X
-경향잡지 2014년 10월 내용 중 전동기 유스티노 신학원장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