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신비
우리는 “주님, 제가 고통 받을 때 어디 계십니까?”라는 물음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고통 중에 우리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향해 “제가 뭘 크게 잘못했기에 이 엄한 벌을 받아야 합니까? 주님은 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착한 사람이 고통을 당합니까? 주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하고 질문하며 통증을 호소한다.
비록 아프지만 하느님을 향해 분노하고 울부짖고 탄식하는 동안 우리는 점점 마음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다. 이는 하나의 정화 단계로서 눈이 열리는 순간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견딜 수 있는 힘을 느끼고 이를 희망으로 여기게 된다. 지금까지 내내 하느님이 우리 곁에 계셨음을 의식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고통이 내게 유익한가?” 또는 “고통 중에 희망이 있는가?”를 새롭게 물을 수 있다. 나아가 고통이 삶에 필수요소라고 확신하고 거기서 다음 단계의 삶에 희망을 건다.
또한 고통 중에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무분별한 애착 등이 얼마나 우리에게 해악이 되는지도 깨닫는다. 곧 악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감정들에 휩싸일 때 우리 눈을 가로막는 허깨비임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진실에 눈을 고정시킨다면 이 허깨비를 제치고 우리 앞에 마주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할 수 있다. 그리고 “너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시는 하느님 안에 조용히 머물게 된다.
이제 “하느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 침묵하시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변해야 할 것 같다. 그분은 때때로 그렇게 하신다고. 그리고 우리를 두렵게 하는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당신을 드러내듯 침묵으로도 당신을 드러내신다고.
하느님의 침묵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에게 침묵은 결정적 시점이기도 한다. 곧 우리가 진정 사심 없는 신앙을 갖도록, 하느님과 관계를 깊이도록, 그리고 그분이 누구신지 넓은 이해를 갖도록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참 하느님이시라면 하느님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우리가 늘 갈망해야 하는 분이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하느님은 신비 안에서 보이지 않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완전히 알게 될 때를 갈망해야 한다.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시련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은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사람은 이기심에서 벗어나 의연하고 용기 있고 꿋꿋하게 살 수도 있지만 살아남으려는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고 종국에 가서는 동물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시련과 고통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가치를 실현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휩쓸려 가치를 상실할 수도 있다. '고통에 값하는 삶'을 사느냐 못 사느냐는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는 외부의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는 정신적 자유공간이 있다. 그곳에 하느님이 계신다. 우리는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힘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체험한다. 예수님은 무엇이든 당신을 통해 선택하라고 말씀하신다. 특히 빵이신 당신을 먹고 그 힘으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힘입어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게 된다.
아무리 끈질긴 고통이라도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보다 강하지 않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믿는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삶의 현장에서 만날 때 살아 계신 하느님이 드러난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 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2코린4, 7-12)
「성경은 왜 이렇게 말할까? 2-주님, 제가 고통 받을 때 어디 계십니까?」(이명기 지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