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겠다.” 늘그막에 얻은 외아들, 하느님의 약속이 온통 걸려 있는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결단을 창세기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라고 요약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라는 말씀은 신명기와 잠언 등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자주 발견되는 표현이지만, 그 의미가 깊고 다양하여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 표현들 가운데서 '경외'를 한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지혜 문학에서 경외는, 인간이 자신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의 한계점에 도달하여 하느님 앞에 엎드리는 순간을 나타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느님을 제대로 잘 알아서, 또는 하느님과 친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신심 행위가 아닙니다. 인간이 도저히 파악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신비 앞에, 또는 인간을 완전히 압도하여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차원이 다른 지혜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여 경외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느님께서 하실 일을 미리 예상하여 안심하고 모리야 산에 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산에 오르는 아브라함은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길이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길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믿었기 때문에,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순종하고 따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우리 인간이 경외해야 할 분이십니다. 복음에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시어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신 예수님도 경외를 받으셔야 할 분이십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과 같은 시험과 시련을 우리에게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 순간에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과 신뢰로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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