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도시들의 멸망을 바라봅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침묵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하느님께 간청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진노하실까 두려워하면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하느님께 청하고, 청하고 또 간청했습니다. 그 결과에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소돔과 고모라를 내려다보러 갑니다. 아마도 밤새 노심초사했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몇 사람이나 되는지, 그가 아는 이들을 모두 헤아려 보았을까요? 열 명에서 더 숫자를 줄였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께 더 애원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가도 고민했을까요? 어쨌든 아침 일찍 “자기가 주님 앞에 서 있던 곳으로 가서”, 자기가 주님께 매달렸던 그 자리로 가서 결과를 확인합니다. 그 장면을 보고 아브라함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기록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가 그 자리에 갔다는 것은 기록합니다.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 가서 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미 그의 몫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느님의 계획을 알았던 그의 몫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간청하는 것뿐, 그 이상은 오직 하느님의 몫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라고 해서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아무런 유보 없이 바라시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기준은 다수의 악이 아니라 소수의 선이었습니다. 악인이 많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몇 사람 때문에 죄스러운 전체가 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인 열 명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